코로나19 팬데믹 초기 바이러스 감염의 진원지로 낙인이 찍혀 1년 넘게 운항을 하지 못했던 크루즈 선박들. 크루즈 관광의 주 무대인 유럽 지중해 지역의 관광산업은 그동안 추운 겨울을 보내야 했다.
그러다가 유럽의 방역조치가 점차 완화되면서 무려 17개월 만에 이탈리아 베네치아에 입항한 대형 크루즈선 ‘MSC 오케스트라’호. 그러나 세계적인 관광지이자 수상도시인 베네치아 시민들은 관광산업의 꽃으로 불리는 크루즈 선박의 입항을 반대하고 나섰다.
7월 13일 이탈리아 정부는 베네치아 석호 내 역사지구에 대형 크루즈 선박의 입항을 금지시키는 행정명령을 내렸다.
10년 넘게 크루즈 입항을 반대해 온 환경단체와 시간이 갈수록 이들의 주장을 지지해온 베네치아 시민들이 승리하는 순간이다.
이번 행정명령은 8월 1일부터 적용되는데 2만5천톤급 이상이거나 선체 길이가 180m 이상 또는 높이 35m 이상의 초대형 크루즈선은 베네치아의 산마르코 광장과 산마르코 대성당 등 유적이 즐비한 역사지구 석호 안쪽으로 들어올 수 없게 됐다. 대신 본토의 컨테이너항인 마르게라항을 이용해야 한다.
118개의 크고 작은 섬으로 이뤄진 베네치아와 석호는 198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돼 보호받고 있다.
환경단체와 시민들은 초대형 크루즈선이 일으키는 강한 물살이 연약한 르네상스 시대 건축물의 수명을 단축시키고 세계적으로 유일무이한 석호 생태계에 악영향을 준다며 지속적인 운항 반대시위를 전개해왔다.
그러나 크루즈선 업계의 반대와 지역 상권의 반발 등으로 몇년째 논란이 이어져 왔다.
이런 논란 속에 2019년 6월 베네치아의 루이지 브루냐로 시장은 유네스코 측에 베네치아를 ‘위험에 처한 세계유산’ 목록에 올려달라고 공개적으로 청원했고, 최근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 자문위원들은 베네치아 석호를 ‘위험에 처한 유산’ 목록에 올릴 것을 권고했다. 이를 결정할 유네스코 총회는 7월 16일부터 31일까지 열릴 예정이다.
이탈리아 정부의 결단은 이런 상황에서 나왔다.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관광산업 부흥이 절실했던 이탈리아 정부로서는 대단한 결정을 한 셈이다.
대신 약 2천억 원을 들여 마르게라항에 임시 크루즈선 정박 시설을 마련하는 한편, 장기적으로 석호 밖에 크루즈 선박 입항을 위한 영구 선착장 건립을 위한 공모 절차에 들어가기로 했다.
크루즈 관광의 핵심 지역이지만 최근 유럽 지역에선 대형 선박으로 인한 대기오염 등 환경문제를 해결하라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따라서 이번 베네치아의 대형 크루즈 선박의 입항 금지 결정은 주변 다른 항구도시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작은 산만한 덩치의 대형 크루즈선을 상대로 쪽배를 타고 반대 시위를 벌였던 환경단체와 이들을 지지한 시민들의 열정이 아름다운 수상도시 베네치아의 지키는 큰 결실을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