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로로 못가는 곳도 거뜬…병풍처럼 둘러싸인 얼음절벽에 올라 손으로 만져보니 맨질맨질·뽀득뽀득
기항지마다 색다른 매력…스캐그웨이서 골드러시 시대 열차타고 케치칸에서 태고의 원시우림 체험까지

 

사진설명배를 둘러싸고 끝없이 이어지는 새하얀 빙산의 벽. 크루즈 투어는 수려한 경관과 함께 원주민 문화, 골드러시 등 알래스카에 대해 몰랐던 새로운 지식을 선사한다.

배를 둘러싸고 끝없이 이어지는 새하얀 빙산의 벽. 크루즈 투어는 수려한 경관과 함께 원주민 문화, 골드러시 등 알래스카에 대해 몰랐던 새로운 지식을 선사한다.

이러다 크루즈 전문 여행기자가 되는 건 아닐까. 여행+팀에 발령받자마자 홍콩의 드림 크루즈를 섭렵했는데 또 크루즈다. ‘뭉쳐야 뜬다’식 패키지 여행으로 설명하자면 절대 도망 못가는 패키지 여행. 하지만 코스가 마음을 움직인다. 북극의 대명사 알래스카. 그러니까 따끈한 초여름에 즐기는 겨울 나라로의 공간 이동이다.

이거 끝내준다.

 원주민어로 ‘거대한 땅’을 의미하는 알래스카는 이름에 걸맞게 우리나라 면적의 7배나 되는 광활한 땅이다. 보통 투어로 끝나지 않을 거란 예감 아닌 확신이 들었다. 안내를 받아 부두로 향했다. 이미 접해본 적 있는 크루즈선은 이번이라고 특별할 게 있나 싶었다. “5성급 호텔 저리 가라”라고 침 튀기며 설명하는 가이드의 생색에 그나마 있던 기대도 슬며시 밀어넣는 게 낫다 싶었던 찰나. 엄청난 뱃고동 소리에 고개를 들어보니 압도적 크기에 유선형으로 쫙 빠진 뱃머리가 예사롭지 않다. 이 배가 기항지 여행에 함께할 루비 프린세스호. 11만t급으로 타이타닉호의 거의 3배 가까운 크기로 알래스카를 연 20회 이상 운항하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속 빈 강정도 많은 법. 내부는 과연? 기대 반 의심 반으로 오른 루비 프린세스호 내부 서비스와 부대시설은 덩치만큼 수준도 메가톤급이었다.

사진설명알래스카와 같은 극지방의 바닷물은 투명하고 깨끗하며 깊다. 봄과 여름에 떠나는 눈의 나라 크루즈 여행은 그 자체로 하나의 로망이다.

알래스카와 같은 극지방의 바닷물은 투명하고 깨끗하며 깊다. 봄과 여름에 떠나는 눈의 나라 크루즈 여행은 그 자체로 하나의 로망이다.

알래스카 크루즈 투어의 매력은 다양하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백미는 육로로 못 가는 환상적 기항지들을 럭셔리 선상에 올라 모두 가볼 수 있다는 것. 알래스카의 주도인 주노, 골드러시 시대의 모습을 잘 간직한 스캐그웨이를 비롯해 알래스카의 하이라이트 글레이셔 베이 국립공원, 인디언 전통이 살아 있는 케치칸, 그리고 정원의 도시라 불리는 캐나다 빅토리아까지. 모두 알래스카에 있지만 서로 중복되지 않는 고유한 매력을 뽐내는 곳들이다. 알래스카 남단에서 시작된 거대한 피오르만 수십 개. 극지방은 바닷물이 깊고 맑아 울창한 툰드라가 투명한 바다 거울에 비치는 느낌이다. 크루즈선 양쪽으로 병풍 같은 얼음 절벽이 겹쳐 있다가 배가 지나갈 때 문이 열리듯 보이는 모습은 감탄을 자아낸다. 이것은 알래스카 크루즈 여행으로만 접할 수 있는 감동이다.

빙하에 둘러싸인 물살을 가르며 향한 첫 번째 기항지 주노. 준비돼 있는 여러 프로그램 중 가장 인기 있는 건 헬리콥터 멘델홀 빙하 관광이다. 헬리콥터를 타고 멘델홀 빙하 위까지 올라간다. 그리곤 내려서 두발로 디뎌 본다. 신발을 통해 느껴지는 빙하의 감촉. 발로만 느껴서는 모자라다. 맨손으로 만져보고 눌러본다. 반질반질하면서도 뽀득뽀득한 눈과 얼음의 중간적인 느낌. “아, 나 오늘 빙하 만졌어.” 괜히 뿌듯하다. 빙하 체험을 하니 출출하다. 현지 연어구이 시식을 해본다. 찬 바닷물에서 잡아 올려 그런지 신선도가 눈과 혀를 휘어 감는다. 이어 과거와 현대의 모습이 공존한다는 주노 시내를 둘러본다. 호수면 위로 한가로이 떠 있는 얼음 조각과 선명한 푸른색이 이곳이 북극임을 증명해주고 있었다.

북풍의 집 스캐그웨이에서는 화이트 패스 기차여행을 즐길 수 있다. 화이트 패스 열차는 골드러시 시대 사용하던 차량을 개조한 것인데 채굴을 위해 쓰던 이 열차로 금광이 있던 지역까지 갔다 오는 것이다. 투어 내내 터널과 깊은 협곡, 폭포, 빙하 덮인 준봉의 절경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선택관광을 마치자 시간이 좀 남았다. 승선 전까지 간단히 시내를 둘러보고 에메랄드빛 호수를 감상했다. 스캐그웨이 기항은 알래스카 크루즈 일정이 아니고서는 느낄 수 없는 또 하나의 즐거움이다.

이제 알래스카 크루즈의 하이라이트는 글레이셔베이 국립공원이다. 입구에는 매년 40만명의 크루즈선 여행객을 맞이하고 있다는 빙하지구가 보인다. 물 위에 떠 있는 다양한 크기의 빙하 조각과 뮤이르 빙하, 마저리 빙하, 램프러 빙하 코앞까지 배가 갔다가 180도 선회한다. 충돌하는 거 아닌가 조마조마하면서도 선상에서 빙하를 보는 감회 또한 짜릿하다. 빙하를 타고 불어오는 신선한 바람과 끝없이 이어지는 골짜기는 여행지에서 또 다른 사색에 잠기게 한다. 이동 중 바다표범과 해달 등 극지방 동물과의 만남은 알래스카 크루즈 투어의 숨겨진 재미다. 운이 좋을 때는 혹등고래, 북극곰과도 만날 수 있다.

다음 기항지 케치칸으로 향한다. 홀연 놀랄 만큼 기후가 온화해졌다. 케치칸은 온화한 기후와 뛰어난 경관으로 알래스카에서 축복받은 땅으로 불린다. 원시우림 보호지역을 직접 둘러보며 서식하고 있는 블랙베어, 사슴 등 생생한 자연과 마주한다. 알래스카산 게 요리는 오직 케치칸에서만 만날 수 있는 방문객들이 가장 선호하는 포인트다. 알래스카 크루즈의 마지막 기항지 빅토리아에 다다랐다. 이곳은 캐나다 속의 작은 유럽이다. 도시 곳곳에 영국 문화가 짙게 서려 있다. 빅토리아 명소인 부차르 가든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영국식 정원으로 다들 한번씩 들르는 곳이다.

시내 구석구석을 빨간색 2층 버스가 누비는 모습은 마치 런던에 와 있는 착각을 들게 한다.

아직까지 태고의 자연색을 고이 간직하고 있는 대륙 알래스카. 백문이 불여일견이다. 영화에서나 보던 환상적 빙하는 상상 이상으로 강렬한 여운을 남긴다.
[신윤재 여행+ 기자]